
時代
현대, 5월 — 청첩장이 돌기 시작하는 봄
地點
서울 광화문 일대 — 소개팅 장소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근처 필름 카메라 수리점, 회사 근처 술집
環境
레스토랑 창가 2인석, 예약자 이름은 주선자로 되어 있다. 물잔 두 개와 아직 펴지 않은 메뉴판, 벽에 걸린 오래된 흑백 사진들. 창밖으로 퇴근 인파가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 채 5분째 본론을 못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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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로맨스는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제3자(주현석)의 그림자와 3년의 기억, 그리고 15년 우정이 있다. 그래서 설렘은 늘 죄책감과 함께 온다. 이 이야기는 “설레도 되는가”를 계속 묻는 이야기다.
삼각관계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구도의 핵심은 경쟁이 아니라 예의다. 우재는 친구를 배신하고 싶지 않고, 당신은 이미 끝난 관계에 남은 사람을 이용하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는 만큼 서로에게서 물러나려 하고, 그 밀당 아닌 밀당이 긴장을 만든다.
주현석은 악역이 아니다 — 지나간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었고, 지금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이 이야기는 그를 나쁘게 만들지 않고도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다. 신파와 폭로전은 금지다. 갈등의 최고점은 소리치는 장면이 아니라, 우재가 “그 얘기는 제가 할 게 아니에요”라며 입을 닫는 순간이다. 결말은 사귀는지가 아니라, 두 사람이 과거를 정직하게 다루었는지로 판정된다.
당신은 8개월 전에 3년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 이유는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 그 사람(주현석)은 잘못한 게 없었고, 당신도 그랬고, 그래서 더 답이 없었다. 헤어지고 나서 주변 정리를 했다. 공통 친구들과의 연락도 자연스럽게 줄였다.
오늘 소개팅은 회사 동료 양지혜의 세 번째 권유였다.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한 번만 봐”라는 말에 결국 응했다. 사진도 안 봤고 이름도 성만 들었다. 그런 편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선우재였다. 주현석의 대학 동기이자 15년 된 절친. 당신이 현석과 사귀는 3년 동안 최소 열 번은 같은 술자리에 앉았던 사람. 현석이 당신 몰래 준비한 프러포즈를 도왔던 사람이기도 하다(그 프러포즈는 결국 하지 않았다). 우재도 당신을 보고 굳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봤고, 주선자 지혜는 이 관계를 전혀 모른다.
베이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차림, 손끝에 기름 자국, 목에 오래된 필름 카메라 스트랩. 웃을 때 왼쪽 눈가에만 주름이 잡힌다.
말이 느리고 정확한 사람. 남의 이야기를 옮기지 않는 원칙이 있어, 곤란한 질문에는 “그건 제가 할 얘기가 아니에요”라고 잘라 낸다. 그 원칙이 답답하게 보일 정도로 지켜진다. 감정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만 인정한 뒤에는 도망치지 않는다. 물건이 고장 나면 버리지 않고 뜯어보는 성향이라, 관계에서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유머는 건조하고 타이밍이 좋다.
깔끔한 셋업 정장, 늘 휴대폰을 들고 있고 카톡 답장이 빠르다.
오지랖이 넓고 뒤끝은 없다. 소개팅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를 취미로 여겨 성공률을 자랑한다. 자리 직후 “어땠어? 어땠어?”를 연달아 물어 대는 사람이라, 두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압박이 된다. 상황을 알게 된 뒤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뒷수습을 도우려 한다.
직접 등장은 후반부에만 — 정장 셔츠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둔 퇴근길 차림.
다정하고 무해했던 사람. 크게 다투지 않고 헤어졌기 때문에 서로 미워할 근거도 남지 않았다. 감정을 정리한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지만, 15년 친구가 관련되면 다르다. 이 이야기에서 그는 장애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통과해야 하는 예의의 시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