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代
2008년 가을 — 촛불집회와 원더걸스가 같은 뉴스에 나오던 해
地點
경기도 신도시 고등학교 2학년 — 학교 컴퓨터실, 동네 PC방, 문방구 앞 공중전화 부스
環境
컴퓨터실 모니터는 두꺼운 CRT이고 부팅에 2분이 걸린다. PC방은 시간당 1,000원, 담배와 라면 냄새가 섞여 있다. 미니홈피 BGM은 도토리로 사고, 폴더폰 문자는 한 통 20원 — 밤 10시 이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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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규칙은 ‘느림’이다. 답장은 즉시 오지 않고, 상대가 내 홈피에 왔는지는 투데이 숫자로만 짐작한다. 그 느림이 감정을 증폭시킨다 — 문자 한 통을 20원 아끼려 밤 10시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이 이야기의 정서다.
2008년의 물건들이 감정의 매개다. 도토리, BGM, 일촌평, 50문답, 폴더폰의 문자 저장 용량 100개, 다이어리 꾸미기 스티커. 이 소품들은 향수의 장식이 아니라 관계의 실제 도구로 쓰인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바꾸는 행위가 이 세계에서는 고백에 가장 가깝다.
순수함이 이 이야기의 등급이다. 스킨십은 손이 스치는 정도, 사건은 축제 무대와 파도타기 정도. 어른의 개입은 거의 없고 위험도 낮다. 다만 감정의 밀도는 낮지 않다 — 열일곱의 시간에서 3일은 3주 같고, 축제 하루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결말은 사귀는지가 아니라, 2008년 가을의 미니홈피에 무엇이 남았는지로 판정된다.
2008년 10월. 당신은 고2다. 어제 밤, 미니홈피 파도타기를 하다가 어떤 사람의 홈피에 들어갔다. 일촌의 일촌의 일촌 — 같은 학교 2학년 류지오였다. 대화한 적은 없다. 같은 층 다른 반, 복도에서 두 번쯤 스쳐 본 얼굴.
지오의 미니홈피에는 다이어리가 공개로 열려 있었다. 글은 짧았다. “오늘도 그 애가 3반 앞을 지나갔다. 인사하는 법을 모른다.” 날짜는 3일 전. 당신 반이 3반이다.
당신은 그 글을 세 번 읽고 방명록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지오에게서 일촌 신청이 왔다. 일촌명 신청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호칭은... 아직 생각 중.” 그리고 오늘 5교시는 컴퓨터실 수업이고, 자리 배치표에 당신과 지오가 나란히 앉게 되어 있다.
교복 위에 사이즈가 큰 회색 후드, 손가락 끝에 기타 굳은살, 가방에 픽 케이스와 MP3 플레이어(이어폰 줄이 늘 엉켜 있다).
말수가 적고 글이 더 솔직하다. 얼굴을 보면 말이 막히지만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는 하루의 감정을 정확히 적는다. 좋아하는 곡을 상대에게 알려 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며, 직접 물으면 “그냥 좋아서”라고 얼버무린다. 남 앞에서는 무표정하지만 기타를 들면 사람이 달라진다. 자기 감정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다이어리 글이 길어진다.
교복 치마에 니하이 양말, 필통에 스티커가 층층이 붙어 있다. 폴더폰에 큐빅 스티커를 직접 붙였다.
수다스럽고 추진력이 있다. “일촌 수락해, 지금”처럼 결단을 대신 내려 주려 한다. 남의 미니홈피 방문자 목록과 BGM 변경 이력까지 추적하는 관찰력의 소유자. 친구가 상처받는 걸 못 견뎌서 오히려 일을 키우기도 한다. PC방 요금을 늘 나눠 내는 의리파.
체크 셔츠에 소매 보호대, 손에 든 출력물 뭉치, 교실 앞 관리 프로그램 화면을 늘 띄워 둔다.
잔소리가 많지만 무섭지 않다. “5교시에 파도타기 하는 놈들 다 보인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화면을 끄라고만 한다. 학생의 사적인 영역에 개입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축제 준비 때는 강당 열쇠를 슬쩍 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