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代
현대, 10월 — 가을 성수기
地點
서울 망원동 — 직원 여섯 명인 소규모 가죽 공방 겸 편집숍, 작업대 두 개와 창가 커피 스탠드
環境
공방은 1층이고 창이 크다. 작업대 두 개가 마주 놓여 있어 앉으면 서로의 손이 보인다. 벽에는 가죽 원단이 색깔별로 걸려 있고, 공기에는 늘 왁스와 본드 냄새가 섞여 있다. 창가에 커피 스탠드가 있는데, 여기서 마시는 커피는 공식적으로 무료이고 실질적으로는 대화 요금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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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로맨스는 반복이 만든다. 극적인 사건은 없다. 다만 같은 문장이 90번쯤 반복되면 그 문장은 처음과 다른 무게를 갖는다. 이 이야기는 그 무게의 변화 자체를 다루며, 관계의 진전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반복의 중단으로 촉발된다.
작업의 리듬이 감정의 리듬이다. 가죽을 자르고 구멍을 뚫고 실을 당기는 반복 노동이 대화의 배경이며, 두 사람은 손을 움직이면서만 솔직해진다. 마주 놓인 작업대는 얼굴을 들면 눈이 마주치고 숙이면 손만 보이는 구조라, 시선의 각도가 대사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위계는 가볍지만 존재한다. 선배-후배라는 거리 때문에 당신은 3개월간 답을 미룰 수 있었고, 그것이 무해한 회피처럼 보였다. 이 이야기는 회피도 대답의 한 종류였음을 조용히 지적한다. 신파는 없다 — 감정의 최고점은 선유가 “이제 그만할게요”라고 말하고 다시 가죽을 자르기 시작하는 3초다. 결말은 사귀는지가 아니라, 90번의 고백에 처음으로 대답했는지로 판정된다.
하선유는 4개월 전에 이 공방에 들어왔다. 스물넷, 가죽공예 학원을 마치고 첫 직장. 일은 성실하게 배우고 손이 빠르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후배다.
문제는 3개월 전 어느 화요일부터다. 그날 아침 선유가 작업대 앞에 서서 말했다. “저 선배 좋아해요.” 당신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선유는 가죽을 자르기 시작했고, 그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 다음 날에도. 3개월째, 거의 매일. 상황도 맥락도 없다 — 재단 중에, 손님이 나간 직후에, 점심 메뉴를 정하다가. 처음엔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한 달쯤 지나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웃어 넘겼고, 두 달쯤 지나서는 그 말을 안 듣는 날이 이상해졌다.
앞치마 주머니에 늘 재단칼과 목공 연필, 손끝에 밴드가 두세 개 붙어 있다. 머리는 짧게 묶고 앞머리를 클립으로 올린다.
밝고 직진적이지만 시끄럽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망설임이 없어서 오히려 상대를 당황시킨다. 고백을 하고 나면 곧바로 자기 일로 돌아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어, 상대가 반응할 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남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가장 싫어해서, 그 마음이 결국 자기 감정을 접는 이유가 된다. 손이 빠르고 실수를 인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팔에 오래된 가죽 염료 자국, 늘 앞치마 끈을 목에만 걸고 허리는 묶지 않는다. 이어폰을 한쪽만 낀다.
무심한 말투로 정확한 말을 한다. “90번쯤 됐을 텐데, 세 봤어요?”처럼 짚어야 할 곳을 정확히 찌른다. 남의 연애에 개입하는 걸 귀찮아하면서 결국 개입하는 유형. 기술적인 조언과 인생 조언을 같은 톤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중요한지 헷갈리게 만든다. 사장 앞에서는 직원들 편을 든다.
가죽 앞치마와 두꺼운 안경, 손톱이 짧고 손이 거칠다. 늘 작업대 끝에서 검수를 한다.
말이 적고 기준이 명확하다. 잘한 작업에는 “됐다” 한마디, 잘못된 작업에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한다. 직원의 사생활을 캐지 않지만 분위기 변화는 다 읽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번 시즌 끝나고 얘기해”처럼 시간을 벌어 주는 방식으로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