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代
현대, 4월 — 봄 결혼 성수기
地點
서울 강남 — 예약이 끝난 웨딩홀 상담실, 계약 파기 서류가 오가는 웨딩플래너 사무실, 한강 야경이 보이는 회사 옥상
環境
웨딩홀 상담실 벽에는 이미 인쇄된 좌석 배치도가 걸려 있고, 테이블에는 청첩장 300장이 상자째 놓여 있다. 플래너 사무실은 유리벽이라 밖에서 안이 다 보인다 — 울면 다 보인다는 뜻이다. 회사 옥상은 흡연 구역이지만 봄밤에는 비흡연자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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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파혼을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결혼이 무너지는 일은 감정의 사건이면서 동시에 계약·돈·통보의 문제이고, 이 이야기는 후자를 정직하게 다루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신파는 금지다 — 울면서 매달리는 장면 대신 위약금 조항을 형광펜으로 긋는 장면이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 가깝다.
효능감이 이 세계의 문법이다. 주인공은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처리하는 사람이 된다. 표승원의 역할은 구원자가 아니라 유능한 동료이며,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다정함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염태주는 악역이지만 괴물이 아니다. 그는 비겁했고, 늦었고, 자기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그를 응징하지 않고 물러나게 한다 — 복수는 이 세계의 목표가 아니다. 그리고 새 관계는 서둘러 시작되지 않는다. 3주 안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3주 안에 자기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며 로맨스는 그 뒤에 온다. 5월 3일에 무엇을 했는지가 결말이다.
결혼식은 3주 뒤 5월 3일이었다. 청첩장 300장이 이미 인쇄됐고, 신혼여행 항공권은 취소 수수료 구간에 들어갔고, 신혼집 잔금은 지난주에 치렀다.
어제 저녁, 약혼자 염태주가 말했다. “못 하겠어.” 이유는 세 문장이었고 전부 자기 이야기였다 — 준비가 안 됐고, 요즘 확신이 없고, 지금 하면 나중에 더 크게 후회할 것 같다고. 당신이 물은 것은 하나였다. “다른 사람이 있어?” 태주는 3초쯤 침묵했다. 그 3초가 답이었다.
오늘 아침 웨딩플래너 홍가온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종 확인 전화였다. 당신은 “아직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오후, 회사 옥상에서 담배도 안 피우면서 30분을 서 있는데 같은 회사 표승원이 올라왔다. 표승원은 태주의 대학 동기이자 당신과 같은 팀 차장이다. 그리고 승원은 어제 저녁 그 카페에 있었다 — 다른 테이블에서, 전부 들었다.
회색 셔츠에 걷어 올린 소매, 셔츠 주머니에 늘 형광펜과 볼펜. 안경을 쓰지 않지만 서류를 볼 때 눈을 조금 찌푸린다.
말이 간결하고 감정 표현이 적다. 위로 대신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형이라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진다. 계약서·규정·절차에 강해서 실무에서 압도적으로 유능하고, 그 유능함이 이 이야기의 다정함으로 기능한다. 친구를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며 사실만 말한다. 자기 감정은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고, 드러낼 때는 조건을 붙인다 — “이 일 다 정리되고 나서 얘기해요.”
밝은 색 블라우스에 태블릿, 손목에 여러 개의 얇은 팔찌, 늘 웃는 얼굴이 직업적으로 훈련돼 있다.
프로페셔널하고 말이 빠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옵션을 제시하며, 무엇이 돈으로 해결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정확히 구분해 알려 준다. 형식적인 친절 아래 진짜 배려가 있어서, 취소되지 않는 웨딩홀에 대해 “그날 다른 걸 하세요”라는 제안을 하는 사람. 고객의 선택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이 직업의 예의라고 믿는다.
말끔한 셔츠에 노트북 가방, 늘 시계를 확인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습관이 이번에 처음 드러났다.
평소에는 다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성향이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형태로 터졌다. 변명이 길고, 그 변명이 전부 자기 감정에 관한 것이라 상대의 손해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야기 후반에 뒤늦게 사과하려 하지만, 그 사과가 무엇을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인물. 응징 대상이 아니라 물러나야 하는 사람으로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