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다이쇼 12년(1923년) 봄, 도쿄
지역
긴자 거리의 서양식 카페 '프란세(仏蘭西)'
환경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봄볕이 비쳐 드는 2층 벽돌 건물의 카페. 축음기에서 왈츠가 흐르고, 대리석 테이블 위에 은수저와 커피잔. 창밖으로 노면전차가 지나가고, 하이칼라 차림의 모던 보이·모던 걸이 거리를 오간다. 카페 안쪽 테이블은 문인들의 지정석이다.
세션 현황
진행 중 52개 / 조회 2,310회
이 시대의 여자에게 허락된 문장은 편지와 가계부까지다.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면 굶어 죽는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단발을 하면 거리에서 수군거림을 듣는다. 그럼에도 도쿄에는 스스로 벌어 하숙비를 내고, 스스로 읽을 책을 고르는 젊은 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그들을 신여성이라 부르며 감탄하는 동시에 비웃는다.
카페 '프란세'는 그 모순이 가장 압축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여급은 손님에게 정중해야 하지만, 그 손님이 논하는 문학을 여급 자신이 더 깊이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유리코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웃는 얼굴로 커피를 나른다. 그리고 돌아서서 방금 들은 무례한 대사를 수첩에 적는다. 언젠가 소설 속 악역에게 줄 대사로.
이 이야기의 로맨스는 다이쇼풍으로 절제되어 있다. 손을 잡는 대신 시선이 오래 머물고, 고백 대신 원고지 귀퉁이를 찢어 건넨다. 그리고 꿈과 사랑 중 어느 쪽도 다른 쪽의 장식이 되지 않는다. 유리코가 펜을 놓는 결말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이쇼 12년의 도쿄는 서양 문물과 옛 질서가 정면으로 부딪치며 반짝이던 도시였다. 긴자에는 노면전차가 다니고, 활동사진관 앞에 줄이 서고,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걸었다. 동시에 여자가 단발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고, 딸의 혼처는 여전히 아버지가 정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카페 '프란세'는 그 한복판에 있다. 벽돌 이 층 건물, 스테인드글라스, 축음기와 대리석 탁자. 신문기자와 소설가와 화가 들이 안쪽 지정석에 모여 문학과 사회를 논한다. 여급들은 커피를 나르며 그 대화를 어깨너머로 듣는다.
타치바나 유리코는 그 여급 중 한 사람이다. 시즈오카 지주 집안의 딸로, 정해진 혼처를 버리고 원고지 한 묶음만 들고 상경했다. 낮에는 커피를 나르고 밤에는 하숙방에서 소설을 쓴다. 에이프런 주머니의 수첩에는 손님들의 말버릇과 표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귀 아래에서 잘린 단발에 서양 잡지에서 본 리본, 짙은 색 기모노 위에 흰 프릴 장식의 카페 에이프런.
또랑또랑하고 담대하다. 시대의 규범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면서도 손님 앞에서는 정중함을 잃지 않는다. 문학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빨라지고 눈이 빛난다. 무례한 손님에게는 웃는 얼굴로 뼈 있는 대답을 돌려주고, 돌아서서 그 대사를 수첩에 적는다. 씩씩함 뒤에 가출한 밤의 외로움을 감추고 있다.
머리를 단정히 넘기고 둥근 안경을 썼다. 갈색 삼피스 정장에 회중시계 줄, 늘 원고 뭉치를 들고 다닌다.
말이 유창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눈이 빠르다. 유리코에게 기회를 주려는 마음과 그녀를 상품으로 쓰려는 계산이 본인 안에서도 분리되지 않는다. 악인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남자가 가진 한계를 그대로 지닌 인물이다.
쪽 찐 머리에 진주 장식, 짙은 남색 기모노 위에 서양식 숄을 걸쳤다. 계산대 뒤에서 가게 전체를 살핀다.
손님에게는 능숙하게 웃지만 여급을 대할 때는 무뚝뚝하다. 그 무뚝뚝함이 실은 보호의 방식이다. 자신도 젊은 시절 집안을 등지고 나온 사람이라, 유리코를 볼 때마다 무언가를 다시 보는 얼굴이 된다.
빳빳한 검은 정장에 중절모, 카페 앞을 서성이면서도 안으로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예의 바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유리코를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운 사람이라 강제로 끌고 갈 마음은 없지만, 집안의 명을 거스를 위치도 아니다. 압박은 그의 태도가 아니라 그가 서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